2016년부터차근차근…처인성, 서리고려백자요지, 보정동고분군, 심곡서원
교통여건 충족, 누구나 쉽고 알차게···주민과 어우러진 관광지로 우뚝 서길

(용인=김태현 기자) 용인시는 전국최고의 관광지이다. 수도권 최고의 사통팔달의 교통을 자랑하고 있으며 이로 인해 국내 관광객들 뿐 아니라 해외 다양한 관광객들이 용인을 찾는다.

용인시는 이러한 특징을 살려 한 단계 더욱 발전하는 관광 인프라 구축을 위해 역사를 담은 문화재를 공원화하기에 이르렀다. 수년간의 걸친 노력으로 항몽 정신이 깃든 처인성을 비롯해 용인의 정신이 담긴 유적지 등이 시민들의 삶의 더욱 가까워진다. 시는 이를 위해 꾸준한 노력을 기우려 왔다. 국비 확보는 물론 역사의식 고취를 위한 다각면의 방법을 제시하고 실행에 옮겼다.

역사 문화공원으로의 탈바꿈은 그 중 하나다. 문화재 보존강화와 방문하는 모든 이들에게 문화재 관람 편의성을 제공하게 되며 특히 특화된 문화재 체험교육을 위한 문화시설 운영으로 수준 높은 문화향유 기회도 제공할 예정이다. 

용인시는 63개의 국가지정 문화재와 57개의 도지정 문화재, 58개의 향토문화재를 보유하고 있으며 발굴과 보존, 가치의 부여를 통해 후대에 역사를 바로 알리고 삶속에 묻어 있는 곳으로 만든다. <편집자 주>

처인성 역사교육관

◆ 역사공원 조성

처인성 1977년 10월 경기도기념물 제44호로 지정된 처인성은 처인구 남사면 아곡리에 위치해 있다. 이곳은 고려 때 ‘처인부곡’으로 부렸는데, ‘부곡’은 ‘향’, ‘소’와 함께 천민들이 집단으로 거주하였던 곳을 의미한다. 

처인성에서는 통일신라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의 유물이 출토됐다. 이곳은 동서와 남북을 잇는 교통의 요지였으며 군사적으로 중요하게 여겨진은 곳으로 고려시대에는 군량을 저장하던 군창으로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곳이다.

고려 중종 19년(1232)몽골의 2차 침입 당시 처인부곡민과 인근의 승려들이 힘을 합쳐 항전하였는데 승려 김윤후가 몽골군의 지휘관인 살리타를 활로 쏘아 전쟁을 사실상 종료시킨 항쟁의 역사적 의미를 둔 곳이다.

시는 이를 기리기 위해 지난 2016년부터 처인성 일대에 대한 종합정비계획을 마련하고 보전과 문화 누구나 발길을 옮길 수 있는 곳으로 탈바꿈 시키기 위해 노력해 왔다.

시는 처인성을 역사공원으로 조성하기 위해 기획재정부에 신청한 사업이 지역발전특별회계 신규 사업으로 선정돼 국비를 확보했다. 

시는 이를 근거로 처인성 일대에 디지털 체험관, 활쏘기 체험장, 주차장 증설, 탐방로 조성, 수목 정비 등의 사업을 시작해 올 5월에는 주변정리 사업이 준공을 앞두고 있으며 2021년 12월 경에는 역사교육관이 들어선다. 

용인 보정동 고분군 조감도

보정동 고분군 기흥구 보정동 삼막곡 저수지 근처 소실봉에서 남쪽으로 뻗은 가지능선의 끝 남쪽 사면에 넓게 펼쳐져 있는 보정동 고분군은 신라시대의 고분군으로 2002년 지표조사 때 다수의 봉토분이 발견되었고 2004년부터 2006까지 발굴조사로 구석기문화층을 비롯해 총 210기의 백제시대 움집, 원삼국시대 독무덤과 토실, 통일신라시대 돌방무덤, 통일신라에서 고려시대의 돌넛널무덤, 중·근세에 조성된 회곽묘와 널무덤 등 다양한 시기에 걸친 생활·분묘 유구가 조사되었다. 2021년까지 주차장, 화장실, 야외체험장이 조성된다.

용인 서리고려백자요지

◆ 종합정비

서리고려백자요지 용인시 처인구 이동읍에 위치한 서리 고려백자요지는 2960년대에 발견됐다. 고려초기의 백자요지로 9세기 중반 무렵부터 12세기까지 청자와 백자를 생산하던 곳이다. 발굴조사 결과 이곳에는 거대한 퇴적층이 있는데 퇴적층에서 가마의 유구와 백자, 청자, 도기 조각 등과 작업에 관계되는 건물터도 자리하고 있다. 가마는 벽돌로 된 가마와 진흙으로 된 가마가 있는데 벽돌가마는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밝혀진 것이다. 진흙 가마는 길이 83㎡의 대형가마로 출입구가 27개에 이른다. 

국가 사전 제329호로 2016년도에 종합정비계획이 수립됐으며 시는 2022년까지 토지매입, 발굴조사를 마치고 임시 주차장, 화장실 등을 조성할 예정이다. 체계적인 문화재 보존 정비를 통해 관람의 편의성을 제공하게 된다.

용인 서봉사지

서봉사지 수지구 신봉동에 자리한 서봉사지는 2012년에 정비계획이 수립됐다. 2019년에는 서봉사지 주변정리공사 실시설계용역이 문화재청의 승인을 받았고 올해 12월 주변정리공사가 마무리 될 예정이다. 서봉사지는 수원시와 용인시의 경계인 광교산 동남쪽 해발 260m의 구룡에 자리잡고 있다. 고려시대 세워진 사찰이며 조선 초기 승유억불 정책하에 시행되었던 사찰혁파 대상에서도 제외되었을 정도로 큰 사찰이었다.

이곳이 서봉사의 옛터임이 밝혀진 것은 현오국사탑비를 보호하기 위한 비각을 세우는 공사를 하던 도중에 기록이 남아있는 기와조각이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명종 15(1185)에 세워진 현오국사 탑비는 현오국사의 행적을 후대에 알리기 위해 세워진 것으로 알려졌으며 현재에는 비석만이 남아있다. 비 몸의 높이는 1.8m, 너비는 0.97m 이다. 비문에는 글을 지은 이와 건립연대 등이 기록되어 있는데, 본문을 쓴 사람은 이지명(고려 명종 대의 문신)이며 rmfTL를 쓴 사람은 초서로 이름을 날렸던 유공원이다. 비문에 의하면 현오국사는 고려 중가의 승려로 대각국사 여풍의 권위를 계승한 대표적인 고승으로 평가되고 있다.

심곡서원 수지구 상현동의 심곡서원은 정비를 위해 지난해 토지매입이 완료됐다. 심곡서원은 조선 중기 증종 대의 학자이며 정치가 였던 정암 조광조(1482·1519) 선생의 EMt을 기리고 제사 지내기 위해 세운 서원이다. 조광조 선생은 조선 중종(재위 1506~1544) 때 사림파의 대표로 활약하면서 급진적인 사회개혁정치를 추진하다 기묘사화로 사약을 받고 죽음을 당하였다. 훗날 효종(원년1650)에 조광조의학덕과 충절을 기리기 위해 서원을 설립했다. 요종은 ‘심곡’이라는 현판과 토지ㅏ,노비 등을 하사하여 심곡서원은 사액서원이 되었다.
시는 주변의 도시개발 심화로 인한 주변 역사·문화환경 보호를 위해 정비 기반을 확보하고 추진하고 있다.

용인 할미산성

◆ 문화재, 국가사적 지정

할미산성은 경기도기념물 제215호로 처인구 포곡읍 마성리에 자리하고 있으며 삼국시대 용인의 생활사를 알 수 있는 귀중한 사적이다. 신라시대의 산성 축조 양식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으며 팔각형 건물지 3동 대형건물지 2동, 집수시설 2기, 망루시설2동 등이 남아있다. 굽다항아리, 시루, 쇠낫 등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유물 등이 그대로 보존돼 있으며 이곳은 신라 북진기에 한강유역으로 진출하는 교두보 역할을 수행하고 알리기 위해 만들어졌다. tyl는 보존을 위해 지난 2010년 토지매입, 발국조사종합정비 계획 등을 세웠으며 오는 2022년까지 전망대 설치 등 국사사적 지정을 위한 체계를 갖췄다. 올해 할미산성 6차 발굴조사를 완료하고 사적신청 관련 문화재청 현지조사, 7차 발굴, 수목 정리 등 체계적인 계획이 진행 중이다. 발굴 유적은 원형 그대로 보존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추후 한남정맥 구간 내 할미산성과 석성산을 연계하는 탐방로가 만들어 진다.

석성산 봉수터 2017년 문화재청 긴급발굴지원사업으로 선정돼 같은 해부터 발굴조사가 시작된 석성산 봉수터는 지난해 발굴조사에서 건물 구조를 갖춘 구들, 우물 등 봉수군이 거주하던 시설의 흔적을 발견됐다. 건물은 정면 2칸, 측면 1칸의 규모로, 내부엔 아궁이와 온돌 기능의 고래시설 3열 등 구들이 잘 남아있어 봉수를 관리하던 봉수군이 거주했을 것으로 추정된다.선조실록에 따르면 용인과 양지 사이의 요충지인 석성(石城)을 수축하고 중들을 모집해 '방옥을 짓게 하였다(蓋造房屋)'는 기록이 나와 있다.또 세종실록지리지의 용인현 관련 기록에 따르면 석성 내에 작은 우물이 있다고 나오는데 기존에 알려진 우물 1기와 별개로 이번 조사에서 우물 1기를 추가로 확인했다.시는 지난해 문화재청 긴급발굴조사 지원사업에서 2차로 선정된 만큼 석성산 봉수터 검눌지 정밀발굴 조사를 실시했다. 올해는 발국조사를 조합함과 동시에 도지정문화재 진정을 신청 할 예정이다. 2021년에는 도문화재지정 이후 봉수 복원 및 주변 정리를 실시하고 시민들과의 연결고리를 만들어 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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